📌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상을 바꾼 위대한 철학들은 무엇인가?
아담 스미스의 자유시장 체제와 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모순 분석 철학이 핵심입니다.
💡 아담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의 핵심 사상은 무엇인가?
| 철학자 | 핵심 사상 |
| 아담 스미스 | 노동이 국부의 원천이며, ‘보이지 않는 손’에 의해 자유시장이 작동한다. |
| 칼 마르크스 | 노동 착취로 발생하는 ‘잉여 가치’가 자본주의의 모순이자 위기의 원인이다. |

Contents
- 1 📌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상을 바꾼 위대한 철학들은 무엇인가?
- 2 💡 아담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의 핵심 사상은 무엇인가?
- 3 1. 2008년 금융 위기와 새로운 경제 아이디어의 필요성
- 4 2. 경제학의 창시자, 아담 스미스 탐색
- 5 2.1. 스미스의 초기 연구와 ‘도덕 감정론’
- 6 2.2. 대륙 여행과 경제 사상 형성
- 7 2.3. ‘국부론’ 집필 과정과 초기 활동
- 8 3. 아담 스미스의 핵심 사상: 국부론
- 9 3.1. 노동 가치론과 보이지 않는 손
- 10 3.2. 스미스 사상의 오해와 도덕적 기반
- 11 4. 칼 마르크스의 등장과 사상적 배경
- 12 5. 마르크스의 혁명적 변화와 공산주의 선언
- 13 6. 런던 망명 시기, 빈곤과 ‘자본론’ 집필
- 14 7. ‘자본론’의 핵심 분석: 상품, 가치, 잉여가치론
- 15 7.1. 상품의 가치와 노동 가치론
- 16 7.2. 잉여가치(절대적/상대적)의 발생과 착취
- 17 8. 마르크스의 죽음과 ‘자본론’의 완성 및 영향
- 18 9. 스미스와 마르크스 사상의 재해석과 현대적 의미
📌 자본주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상을 바꾼 위대한 철학들은 무엇인가?
아담 스미스의 자유시장 체제와 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모순 분석 철학이 핵심입니다.
💡 아담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의 핵심 사상은 무엇인가?
| 철학자 | 핵심 사상 |
| 아담 스미스 | 노동이 국부의 원천이며, ‘보이지 않는 손’에 의해 자유시장이 작동한다. |
| 칼 마르크스 | 노동 착취로 발생하는 ‘잉여 가치’가 자본주의의 모순이자 위기의 원인이다.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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아담 스미스와 칼 마르크스의 핵심 사상을 관통하며,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현대 경제의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제시하는 콘텐츠입니다. 이 영상은 ‘자본주의의 아버지’ 스미스의 ‘보이지 않는 손’과 마르크스의 ‘잉여가치론’을 깊이 있게 분석하며, 두 사상가가 인간에 대한 깊은 연민에서 출발했음을 강조합니다. 복잡한 경제 이론 대신, 이기심과 도덕성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, 그리고 현대 자본주의가 겪는 위기 속에서 우리가 새로운 경제 원리를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실용적인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.
1. 2008년 금융 위기와 새로운 경제 아이디어의 필요성
- 2008년 미국 발 금융 위기가 발생했으며, 이는 단기간에 진정되지 않고 현재까지도 위기의 상황이 지속되고 있음을 언급합니다.
- 지난 50여 년간 끊임없이 경제 위기의 파도를 넘어왔으며, 그때마다 새로운 경제학 아이디어가 위기를 헤쳐나갈 나침반 역할을 해왔습니다.
-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하며, 이를 위해 위기의 순간에 나타나 세상을 구한 위대한 경제학자들을 만나보고자 합니다.
-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사는 우리도 유럽과 미국의 경제학자들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, 우리가 그들과 질적으로 같은 경제 제도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.
-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구할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제시합니다.
2. 경제학의 창시자, 아담 스미스 탐색
2.1. 스미스의 초기 연구와 ‘도덕 감정론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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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아담 스미스는 1759년 스코틀랜드의 글래스고 대학에서 유명한 도덕철학 교수로 재직했습니다.
- 스미스는 사람들을 꾸준히 연구하여 그 생각들을 모아 ‘도덕 감정론’이라는 책을 저술했습니다.
- ‘도덕 감정론’은 “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인데, 어떻게 이기심을 누르고 도덕적 판단을 할 수 있는가?”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.
- 스미스는 인간의 마음속에 행동을 지켜보는 공명정대한 관찰자가 있어서 이기심을 조절하고 도덕적으로 행동하게 만든다고 주장했습니다.
- 이 주장은 폭넓은 관심을 받아 스미스를 유명하게 만들었고, 이 유명세 덕분에 찰스 타운세드 공작의 제안을 받아 그의 양아들 헨리 스커트의 대륙 여행에 가정 교사로 동행하게 되었습니다.
2.2. 대륙 여행과 경제 사상 형성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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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스미스는 3년간의 여행 동안 리우주, 제네바 등을 다니며 당시의 쟁쟁한 사상가들을 만났고, 이들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.
- 18세기는 보편적 질서가 무너지고 근대 자본주의가 막 시작되던 변화의 시대였으며,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으로 생산품이 폭발적으로 늘어나 자유무역이 활발해지던 시기였습니다.
- 당시에는 국가의 부를 금과 은의 축적으로 보는 중상주의 사상이 지배하고 있었습니다.
- 스미스는 프랑스에서 만난 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는데, 사회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사람이 식량을 먹어야 살 수 있는 것과 같으며, 인간의 노동을 통한 상품 유통으로 사회가 성장한다는 개념이었습니다.
- 네로는 사회가 세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, 화폐가 그 세 계급 사이를 돌며 생산물을 공급한다고 보았고, 지혜와 더불어 부의 원천이라는 중농주의를 주장했습니다.
- 이러한 경제 사상은 스미스에게 큰 영감을 주어, 국부(國富)는 중상주의가 주장하는 금과 은의 축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했습니다.
- 스미스는 국부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국부를 증진시킬 방법을 연구하기로 결심한 후 3년간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.
2.3. ‘국부론’ 집필 과정과 초기 활동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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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스미스는 평생 의존했던 어머니와 가족 덕분에 연구와 집필에만 열중할 수 있었습니다.
- 집에 돌아온 스미스는 여행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‘국부론’ 집필을 시작했으며, 글래스고 대학 시절의 자료도 소중한 자료가 되었습니다.
- 그는 사회의 규모와 성장 과정을 연구하며 ‘국부론’을 완성했고, 스스로를 올림픽이라고 칭하기도 했습니다.
- 그는 자유시장의 위력을 느끼기 위해 크고 작은 공장에서 근로자들과 시간을 보내며 국민 경제 연구에 완전히 몰두했습니다.
- 스미스는 ‘말랑미술클럽’을 만들어 ‘빈 머리 회식’, ‘수프레’, ‘만찬 파티’ 등을 열기도 했으며, 국부가 되기 위해서는 신선한 이성, 정직, 국가애, 미덕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.
- 그는 데이비슨과 자주 만나 함께 문제를 해결하려 노력했으며, 나라의 부와 번영, 경제 발전에 대해 문제 제기를 목표로 삼았으나 향상에 이르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습니다.
- 스미스는 많은 사람들과 사귀지는 않았지만 당대를 대표하는 자들과 지속적인 모임을 가졌으며, 매주 저녁을 함께하며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.
- 마침내 1776년 3월, 스미스의 가장 중요한 책인 ‘국부론(The Wealth of Nations)’이 탄생했습니다.
3. 아담 스미스의 핵심 사상: 국부론
3.1. 노동 가치론과 보이지 않는 손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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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스미스가 ‘국부론’을 통해 밝히고자 했던 것은 국부를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.
- 그는 어디서든 노동이 이루어지면 부가 생산될 수 있다고 생각했으며, 국부를 모든 국민이 소비하는 필수품과 편의의 양이라고 새롭게 정의했습니다.
- 국부를 만들어내는 것은 오직 노동이며, 모든 가치는 노동에 의해 섬겨진다고 주장했습니다.
- 스미스는 ‘국부론’을 통해 당시 지배적이던 중상주의 사상을 정면으로 반박했습니다.
- 모든 가치가 노동에 의해 생기므로, 상품의 교환 가치는 그것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노동량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.
- 보이지 않는 손의 의미에 대해, 우리가 빵을 먹는 것은 빵집 주인의 자비심이 아니라 돈을 벌고 싶은 이기심 때문이지만, 결국 가격을 결정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어 시장 경제를 잘 돌아가게 한다고 설명했습니다.
- 그는 자유로운 시장이 개인과 국가를 부자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, ‘보이지 않는 손’은 국부론에서 단 한 번만 언급되었지만, 그가 꿈꾸는 완전한 자유시장 체제를 설명하는 핵심이었습니다.
- ‘국부론’은 출간 6개월 만에 초판 천부가 모두 팔려나가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고, 스미스는 상대 최고의 학자라는 명예를 얻었습니다.
3.2. 스미스 사상의 오해와 도덕적 기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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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‘국부론’의 첫 장은 현대 경제학에서 사용되는 여러 개념을 보여주며,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기본 원리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는 명문으로 평가됩니다.
- 정부 개입이나 규제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아담 스미스를 자주 끌어다 썼으나, 그의 사상은 많은 오해를 받았습니다.
- 개인의 경제적 이기심 추구에 대한 오해와 관련하여, 스미스는 개인의 경제적 이기심이 사회 도덕적 한계 내에서만 허용된다고 명시했습니다.
- 스미스는 인간의 끝없는 이기심을 결코 허용한 적이 없으며, 이는 그가 이전에 쓴 ‘도덕 감정론’의 주장과 정확히 일치합니다.
- ‘국부론(The Wealth of Nations)’과 ‘도덕 감정론(Theory of Moral Sentiments)’은 서로 긴밀한 연관성을 가지며, ‘국부론’을 읽을 때는 도덕적 이론을 함께 읽어야 합니다.
- 스미스는 1790년 7월 17일에 세상을 떠났으며, 완벽하지 않은 원고를 남기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다.
- 스미스는 자본주의라는 표현을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으며, 그 대신 인간의 도덕적 범위 내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시장 체제라는 이상을 떠올렸습니다.
- ‘국부론’의 원제는 ‘국부(複數)’로, 특정 국가나 국민이 아닌 여러 국가와 국민이 함께 잘 살아가는 것을 연구한 책이라는 의미입니다.
- 그가 꿈꿨던 세상은 1%의 탐욕과 부, 99%의 고통받는 사회가 아닌, 아담 스미스의 자유로운 시장 체제였습니다.
- 19세기를 거치며 자본주의의 모습이 갖춰졌으나, 자본가에 의해 노동자들의 고통은 점점 커져갔습니다.
4. 칼 마르크스의 등장과 사상적 배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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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스미스처럼 인간에 대해 깊이 고민한 인물로 독일의 철학자 칼 마르크스가 등장합니다.
- 2008년 BBC 선정 ‘가장 위대한 철학자’ 1위는 칼 마르크스였으며, 이는 공산주의를 연상시켜 이해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.
- 마르크스는 최초로 “왜 가난한 사람은 항상 가난할까, 자본주의는 정말 이상적인 체제일까?”라는 의문을 던진 학자였습니다.
- 그는 산업혁명으로 기계 부품처럼 전락한 노동자의 삶을 보고, 자본주의가 그들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밝혀내고자 했습니다.
- 청년 시절 마르크스는 헤겔의 변증법에 빠져 있었으나, 헤겔이 주장한 사상이 세계를 이끌어간다는 관점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.
- 마르크스는 포이어바흐의 유물론을 받아들여, 물질이 세계를 구성하고 지배하며 이끌어간다고 보았습니다.
- 결국 그는 헤겔의 변증법에 유물론을 더하여 유물론적 변증법이라는 자신만의 철학적 관점을 갖게 되었습니다.
- 1830년, 마르크스는 민주적 반정부 신문인 라인 신문의 편집장이 되었으나, 무신론자이자 급진적인 인물에게 대학교수직은 불가능했습니다.
- 따라서 그는 기자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고, 이 시기부터 급진적인 시각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.
- 기자 생활을 하며 현실 세계의 조건을 연구했고, 그 조건들이 충격적이었음을 언급합니다.
5. 마르크스의 혁명적 변화와 공산주의 선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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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마르크스는 파리에서 공산주의와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만나게 되었으며, 엥겔스는 마르크스를 가장 뛰어난 사상가로 여겼고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후원자였습니다.
- 엥겔스는 마르크스가 유일한 길이라 믿고 함께 일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, 마르크스는 책을 통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널리 전파하려는 야망을 가졌습니다.
- 마르크스는 리옹에서 비참한 노동자들의 삶을 목격하고 엥겔스를 만나면서 노동운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, 혁명적인 공산주의자로 변화했습니다.
- 1845년 2월, 마르크스는 브뤼셀로 가서 프로이센 국적을 포기했습니다.
-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보르셀 비밀 동맹과 접촉하며 그곳에서도 혁명을 원했습니다.
- 1848년, 두 사람은 공산주의자 동맹의 선언문을 쓰게 되었는데, 그 유명한 구호는 “workers of all countries, unite!” (만국의 노동자여, 단결하라!)입니다.
- 이 선언문은 유럽이 혁명과 혼란의 폭풍을 겪던 1848년에 출판되었으며, 자본주의 체제가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할 수 있지만 동시에 위기에 노출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.
- 마르크스는 이 시기 브뤼셀 등 여러 곳을 다니며 혁명에 참여했고, 이 사건을 통해 인류 해방을 가져올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조한 인물로 명성을 얻었으며 ‘붉은 박사’라는 악명 높은 별명도 얻었습니다.
- 결국 마르크스는 추방당했고 혁명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.
- 1849년, 마르크스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영국으로 망명했습니다.
6. 런던 망명 시기, 빈곤과 ‘자본론’ 집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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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런던 망명 시기, 마르크스는 가족을 제대로 부양하지 못한다는 제니의 비판을 받았으며, 1855년 4월에는 아들 에드가가 폐렴으로 사망했습니다.
- 이후 5년간 가난한 생활이 이어졌고, 마르크스는 그 기간 동안 세 자녀를 잃었습니다.
- 마르크스에게 끊임없는 문제는 돈이었는데, 정기적인 수입원이 없었기 때문이며, 글쓰기와 저널리즘으로 약간의 돈을 벌었으나 항상 부족했습니다.
- 이후 상속과 엥겔스의 기부 덕분에 마르크스 가족은 작은 테라스 하우스로 이사하여 생활이 안정되었고, 마르크스는 마침내 ‘자본론’ 집필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.
- 영국에서의 빈곤한 시절에도 그는 모순들을 분석하고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노력했으며,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아담 스미스의 ‘국부론’을 수백 번 읽었습니다.
- ‘자본론’에서 가장 많이 인용한 책이 바로 ‘국부론’이었습니다.
- 드디어 1867년, 마르크스가 15년 이상을 바친 필생의 역작인 ‘자본론 제1권: 자본의 생산 과정’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.
- ‘자본론’은 마르크스가 자신의 유물론적 변증법을 경제 연구에 최초로 적용하여 자본주의 문제점을 분석한 책입니다.
7. ‘자본론’의 핵심 분석: 상품, 가치, 잉여가치론
7.1. 상품의 가치와 노동 가치론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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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‘자본론’에서 제일 먼저 다룬 것은 상품이며, 상품은 인간이 생산하고 사용하는 모든 물건을 의미합니다.
- 상품은 ‘사용 가치’(쓸모)와 ‘교환 가치’(교환 가능성)를 모두 가지며, 노동을 통해 생산된다고 정의했습니다.
- 상품의 가치는 상품을 생산하는 데 들어간 평균 노동 시간으로 결정된다고 정의했습니다 (예: 6시간 동안 6켤레 신발을 만들면 신발 가치는 노동 시간).
- 화폐는 상품의 가치를 표시하는 수단으로 보았으며, 돈이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믿는 화폐의 신성시가 생겨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.
- 마르크스는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의 노동 가치론을 이어받아 노동이 최고의 가치라고 전했으나, 스미스와 달리 노동자를 기계 부품처럼 만든다고 지적했습니다.
- 마르크스가 ‘자본론’을 쓴 주요 목적은 쉬지 않고 일하는 노동자는 가난한데, 반대로 놀고 있는 자본가는 왜 더 부자가 되는가라는 의문을 풀기 위해서였습니다.
7.2. 잉여가치(절대적/상대적)의 발생과 착취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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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마르크스는 이윤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아내기 위해 빵 공장 예시를 들었습니다.
- 빵 한 개 생산에 필요한 노동 시간은 밀가루(1노동 시간) + 기계 사용(1노동 시간) + 노동력(1노동 시간)으로 총 3노동 시간이 듭니다.
- 만약 1노동 시간을 1,000원으로 환산하면 빵 한 개는 3,000원이 됩니다. 노동자가 하루 8시간 일하면 24노동 시간이 나오며, 만든 빵 8개의 가치는 24,000원이 됩니다.
- 문제점: 기계나 원료의 가치는 인정되지만, 노동자는 8시간 일했음에도 자본가는 일당으로 3,000원(3노동 시간 가치)밖에 주지 않습니다.
- 나머지 5노동 시간(5,000원 가치)은 자본가의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는데, 마르크스는 이 남은 가치를 ‘잉여 가치’라고 명명했습니다.
- 노동자는 자본가가 그만두라고 하면 그만둬야 하므로 거절할 수 없으며, 자본가는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노동자에게 더 오래 일하게 하고 일당은 주지 않아 노동자를 착취하여 부를 얻게 됩니다.
- 노동 시간 연장으로 만들어진 잉여가치를 마르크스는 절대적 잉여 가치라고 정의했습니다.
- 자본가는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노동 생산성을 높이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.
- 기계를 도입하여 빵을 만들면 같은 개수를 만드는 데 필요한 노동 시간이 줄어들고, 이는 필요 노동 시간은 줄고 잉여 노동 시간이 늘어나는 결과를 낳습니다.
- 이로 인해 노동자 임금은 낮아지고 자본가는 이윤을 남기게 되며, 마르크스는 이렇게 생긴 이윤을 특별 잉여가치 또는 상대적 잉여가치라고 했습니다.
- 기계가 노동을 대신하면 실업자가 증가하고, 일하려는 사람이 많아져 임금이 더 낮아지며, 상품은 쏟아져 나오지만 팔리지 않아 기업과 자본가도 망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.
- 결국 자본주의 위기인 공황이 시작되고, 참다못한 노동자들이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경고했습니다.
8. 마르크스의 죽음과 ‘자본론’의 완성 및 영향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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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1883년 3월 14일, 마르크스는 엥겔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삶을 마감했습니다.
- 그의 사후, 엥겔스는 마르크스의 유고를 모아 1885년에 ‘자본론 제2권: 자본의 유통 과정’을, 1994년에 제3권: ‘자본주의적 생산의 총 과정’을 발간했습니다.
- ‘자본론’은 사회주의의 성서로 불리며, 성서보다 더 많이 팔린 책이라는 명예를 얻었습니다.
- 한 세기가 지난 후, 마르크스의 사상은 레닌을 비롯한 혁명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으나, 그들 중 단 한 명이라도 그의 사상을 올바로 이해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합니다.
- 칼 마르크스는 억압받는 노동자를 도와 공산주의 사회를 실현하고자 했던 혁명가, 유물론적 방법으로 세상을 해석한 철학자, 자본주의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지식인이었습니다.
- 마르크스는 공산주의 국가 탄생에 영향을 끼쳤으나, 북한과 대립 중인 한국에서는 그를 객관적으로 보기가 어려웠으며 오랜 세월 동안 입 밖에 내서는 안 될 인물이었습니다.
- 현재 마르크스가 예측했던 자본주의 국가들은 위기를 겪으며 휘청거렸지만 아직 잘 버티고 있는 반면, 공산주의 국가들은 독재와 빈곤을 겪으며 20세기 말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렸습니다.
- 경쟁에서 승리한 자본주의 국가들은 마르크스와 그의 책들에 대해 너그러운 태도를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.
- ‘자본론’ 출간 후 140년이 지났고, 자본주의 붕괴 예상은 빗나가고 공산주의가 붕괴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.
9. 스미스와 마르크스 사상의 재해석과 현대적 의미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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- 자본주의는 위기 때마다 새롭게 변신하며 살아남았는데, 이는 마르크스가 남긴 자본주의에 대한 우려 제기 덕분이 아닐까 추론해 볼 수 있습니다.
- 마르크스가 ‘자본론’을 쓴 근본적인 이유는 가난한 노동자들에 대한 연민과 그들을 위기에서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었습니다.
- 아담 스미스가 ‘국부론’을 통해 꿈꾸고, 마르크스가 ‘자본론’을 통해 펼쳤던 이상적인 세상은 결코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.
- 두 사람의 공통점은 사상의 시작점이 인간에 대한 사랑이었다는 점이며, 그들은 인간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.
- 현대 경제학이 수식이 난무하는 것과 달리, 이들의 사고는 시작점부터 달랐습니다.
- 자본주의는 아담 스미스를 오해했고, 공산주의도 칼 마르크스를 오해했습니다.
- 그들에게는 오직 사람을 사람답게 보는 시선이 있었을 뿐이며, 그들이 그린 세상은 끝없는 자본주의의 욕망이나 소수 지배의 독재 사회가 아니었습니다.
- 아담 스미스가 이기적인 인간 속에도 공명정대한 관찰자가 있다고 믿었듯이, 위기의 순간에 우리 안의 공명정대한 관찰자가 세상을 구해주기를 기대해 보는 것입니다.
- 현재 경제학은 신자유주의로 대표되며, 지난 100년간 시장이냐 정부냐를 두고 싸워왔습니다.
- 글로벌 금융 위기 등 계속되는 경제 위기 속에서 21세기를 책임질 새로운 경제 원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.
- 마지막으로, 만약 이 이야기를 세상에 알린다면 충분하지 않을 것이며, 계속해서 추구해야 할 것임을 다짐합니다.